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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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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 나무위키:대문
공식명칭은 아랍에미리트연합국(United Arab Emirates, دولة الإمارات العربية المتحدة). 줄여서 UAE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수도는 아부다비.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2/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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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 서비스 제공 국가 < 세계법제정보
아랍에미리트는 7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나라로, 각 토후국은 수도인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움알카이와인, 아즈만, 라스알카이마, 푸자이라이며, …
Source: world.moleg.go.kr
Date Published: 3/18/2022
View: 402
아랍에미리트 (UAE) 국가 기본정보 – 브런치
국가원수는 현재 Sheikh Khalifa bin Zayed Al Nahyan이며 수도는 아부다비이다. 주요 도시는 아부다비(Abu Dhabi)로 UAE 수도이며 UAE 최대 원유생산 …
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9/16/2021
View: 8397
아랍에미리트연합국 – 국가/지역 검색 | 외교부
국명 : 아랍에미리트연합국 The United Arab Emirates(UAE) · 수도 : 아부다비(Abu Dhabi) · 인구 : 928만명 (‘21.6월 연방통계청) · 면적 : 8만 3600㎢ (한반도의 약 1/3) …
Source: www.mofa.go.kr
Date Published: 12/22/2021
View: 3645
아랍에미리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구: 577만 9760명(2015년 현재); 면적: 8만 3600㎢; 수도: 아부다비; 정치형태: 대통령 중심제, 연방공화제, 연방평의회; 언어: 아랍어, 영어; 종교: 이슬람교, …
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1/21/2021
View: 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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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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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UAE) 국가 기본정보
아랍에미리트 (UAE) 국가 기본정보
1. 국가 일반 개항
아랍에미레이트는 1971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했고 7개 토후국이 모여 동년 12월2일 아랍에미레이트 연방(United Arab Emirates) 정부를 수립했다. 따라서 아랍에미레이트는 매년 12월2일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아랍 토후국(土侯國) 연방이라고도 부르며 약칭은 UAE이다. 아라에미레이트는 1971.12, 아랍연맹 및 UN에 가입(132번째) 했다.
공식 명칭은 아랍에미리트연방(United Arab Emirates)이다. 동쪽으로 오만, 남서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으로 카타르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페르시아만(灣)에 면한다. 서쪽으로부터 차례로 아부다비(Abu Dhabi), 두바이(Dubai), 샤르자(Sharjah), 아지만(Ajman), 움알카이와인(Umm al-Qaiwain), 라스 알 카이마(Ras al-Khaimah), 푸자이라(Fujairah)의 7개 토후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스 알 카이마는 1972년 2월에 연합국의 일원이 되면서 아랍에미리트는 현재와 같은 연방 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두바이(Dubai)는 중동지역의 무역.금융.교통.관광 중심지로 유명하다.
위치 : 아라비아 반도 동부
경위도 : 동경 54° 00
면적 : 83600
해안선 : 1318
시간대 : UTC+4
수도 : 아부다비
종족 구성 : 남아시아인(60.5%), 아랍인(23%), 에미리아인(16.5%)
언어어 : 공용어(아랍어) 상용어(영어)
종교 : 이슬람교 (96%), 그리스도교 및 힌두교 및 기타 (4%) 그 중 이슬람교(수니파 80%, 시아파 20%)
건국일 : 1971년 12월 02일
국가원수/국무총리 : 칼리파(Khalifa bin Zayed Al-Nahyan) 대통령(04.11.3 취임)
국제전화 : +971
정체 : 연방 공화제
통화 : 아랍에미리트 디르함(Dirham)
인터넷 도메인 :. ae
홈페이지: http://www.government.ae/gov
인구(명) : 9,662,756 (2019)
평균수명(세) : 78 (2019)
출산율(명) : 2.28 (2019)
1인당 GDP($) : 42,384 (2019)
실업률(%) : 2.575 (2018)
수출 규모(백만$) : 272,682 (2018)
수입 규모(백만$) : 252,261 (2018)
인구밀도(명/㎢) : 114 (2019)
2. 역사
아랍에미리트의 카와심족(族)은 해양 민족으로 예로부터 어업과 해운업에 종사해 왔다. 16세기에포르투갈이 이 나라의 해안에 첫 발을 내딛었으며, 17세기에는 네덜란드와 영국 해군이 인도양의 제해권을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바다를 중심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주민들은 해상에서의 전통적인 생업에 종사할 수 없어 해적으로 전락하였다. 19세기 초에는 와하비(사우디아라비아의 모체)의 보호 아래 유럽 세력에 대항하는 해적행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영국은 1806년부터 무력으로 해적을 격파하기 시작하였으며, 1818년에는 해적의 본거지 라스 알 카이마항(港)과 당시 ‘해적 해안’이라고 불리던 연안 항구들을 정복하였다. 1820년에는 각 토후국의 수장(首長)들과 평화조약을 맺어 해적행위와 노예무역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평화조약이 이행되지 않자 영국은 1835년에 6개월 기한으로 해상 휴전협정을 체결하였으며, 그 후 다시 기한을 갱신하여 이 지역을 ‘휴전 해안’이라 불렀다. 결국 협정은 1853년에 이르러서야 항구적인 해상 휴전조약으로 바뀌었다. 이 조약으로 각 토후국들은 영국의 실질적인 보호국이 되었지만, 영국은 토후국끼리의 육상 교전에는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에 1820년에 5개국이었던 토후국들은 흥망과 집산을 되풀이하였다. 1892년에는 영국 이외 나라들과의 자유로운 교섭이 금지되었고, 이로 인해 아랍의 다른 지역과의 관계가 약화되면서 아랍에미리트는 영국령 인도와 경제적으로 더욱 밀접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이 결정되던 해인 1948년에는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되었다. 이에 영국은 1952년 이 지역에 자국 장교가 지휘하는 군대를 창설하고 연방평의회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석유 산출로 부유해지기를 꿈꾸는 토후국의 수장들은 정치적 통합에는 관심이 없었다. 1955년 아부다비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일어난 부라이미 오아시스의 영유권 분쟁은 석유에 얽힌 영토분쟁이었다. 1958년에 아부다비의 석유개발이 시작되었으며, 1965년에는 영국이 바레인·카타르·아부다비에게 출자하도록 하여 개발기금을 창설하였다.
1965년 아랍연맹에 아랍에미리트 문제 상임위원회가 설치되었으며, 당시에는 바레인과 카타르도 포함시킨 연합국이 구상되었다. 1966년에는 ‘연합국 헌법 제정 위원회’가 발족하였다. 영국은 아덴을 대신할 군사기지를 샤르자에 설치하였으나 1968년 초에는 이 지역의 군대를 1971년 말까지 철수하겠다고 발표하고, 그때까지 연합국을 실현시킬 방침을 정하였다. 같은 해에 바레인과 카타르를 포함한 9개 토후국의 수장이 참석한 첫 번째 회의가 개최되었으나 상호불신과 대립으로 인하여 원활한 교섭 진전이 없었으며, 결국 1971년 여름 바레인과 카타르가 단독으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해 11월 말 영국군이 철수하자 때를 같이하여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샤르자와 라스 알 카이마령의 작은 섬을 점령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란과의 협정에서 샤르자는 연합국에 참여할 뜻을 밝혔으나, 라스 알 카이마는 거부하였다. 따라서 라스 알 카이마를 제외한 6개 토후국(Abu Dhabi, Ajman, Fujairah, Sharjah, Dubai, Umm al-Qaiwain)만으로 구성된 아랍에미리트가 1971년 12월에 탄생했다. 라스 알 카이마(Ras Al Khaimah)는 얼마 뒤인 1972년 2월에 연합국의 일원이 되었다.
3. 정치
아랍에미레이트의 중앙 정부는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공화정체제이며 국가원수가 대통령이라는 특이한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다. 국가원수는 현재 Sheikh Khalifa bin Zayed Al Nahyan이며 수도는 아부다비이다. 주요 도시는 아부다비(Abu Dhabi)로 UAE 수도이며 UAE 최대 원유생산지다.
1971년 12월 독립과 동시에 체결된 잠정헌법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 연방 최고기관은 각 토후국 수장들로 이루어진 연방 최고평의회(수장회의)이다. 모든 사안에 대한 결정은 5명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큰 토후국인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군주는 거부권을 가진다. 각 토후국은 자치권을 가지고 있어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토후국 군주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 1996년 5월 연방 최고평의회는 정식 헌법을 채택하고 아부다비를 연방 수도로 공식 확정하는 등 독립 25주년을 맞아 연방으로서 점차 안정화되어가는 추세이다.
연방 대통령과 부통령은 토후국 군주들 중에서 선출하고 대통령은 총리와 내각을 지명한다. 1971년 이후 대통령은 아부다비의 자이드 국왕(Shaikh Zayed) 이, 부통령은 두바이의 라시드 국왕이 계속 맡고 있었으나 2004년 11월 2일 자이드 국왕이 사망하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였고 2006년 현재 대통령은 셰이크 칼리파 빈 자에드 알 나흐얀이다. 의회는 각 국왕이 임명한 의원들로 구성되며, 임기는 2년이다. 의원수는 토후국 별로 정해져 있는데 아부다비 8명, 두바이 8명, 샤르자 6명, 라스 알 카이마 6명, 아지만 4명, 푸자이라 4명, 움알카이와인 4명으로 총 40명이다. 정당은 없으며, 사법권은 연방대법원에 있다. 단, 종교 관련 사건은 샤르아 법원에서 헌법이 아닌 이슬람 계율을 근거로 재판한다.
4. 경제
UAE는 석유와 천연가스 보유국이자 이를 바탕으로 축척한 부를 통해 정치적 안정과 세제 혜택,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제공하며 전 세계 무역, 금융, 교통, 관광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일곱 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인 UAE 경제는 사실상 석유&가스 산업을 기반으로 한 아부다비와 항공, 관광, 무역 서비스산업을 기반으로 한 두바이가 주도하고 있다.
UAE 연방 및 각 토후국 정부는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의 취약성과 탈 석유시대 성장산업 부재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개발전략의 일환으로 산업다각화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산업 다각화의 정책방향은 지속 가능한 성장산업 구축으로 집약되며, 이를 위해 대규모 투자와 외국인 투자유치를 병행,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
산업다각화 정책의 일환으로 아부다비 정부는 2008년 아부다비 경제비전 2030(Abu Dhabi Economic Vision 2030)을 통해 2030년까지 비석유부문의 GDP 기여도를 64%까지 끌어올리겠다는목표를 설정하였다. 두바이 정부 또한 2007년 발표한 두바이 전략계획 2015(Dubai Strategic Plan2015)의 성공에 이어 두바이 플랜 2021(Dubai Plan 2021)의 시행을 발표(2013년 11월)하고 산업구조 다변화 및 교육, 경제 등 다방면의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두바이는 관광업 특화 경제 계획으로 비전 2020 (Dubai Tourism Strategy 2020)을 발표했으며, 관광 상품 다각화, 관광업의 GDP 기여도와 관광객 증대를 목표하고 있다. 북부 토후국 또한 개별의 경제 계획을 수립했고 샤르자는 관광업 특화의 비전 2021 (Sharjah Tourism Vision 2021), 아즈만은 지속 가능성 개발에 초점을 맞춘 아즈만 2021 (Ajman 2021), 푸자이라는 주거와 교통 인프라 개발을 위한 푸자이라 2040 (Fujairah 2040)를 실천 중이다. 천연자원과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큰 도전이 되고 있음에도 신산업을 육성하려는 UAE 정부의산업다각화 정책에 따른 비석유부문 경제 전반은 고른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전형적인 아랍 산유국형의 경제구조로, 원유의 생산 및 수출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원유 산출량은 1972년에는 5811만 t이었으나 1997년에 9872만 t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 중 아부다비(Abu Dhabi)가 8136만 t, 두바이(Dubai)가 1600만 t, 샤르자(Sharja)가 136만 t을 생산하였고, 라스 알 카이마(Ras al-Khaymah)에서도 해저 유전이 발견되었다. 천연가스의 산출량은 1973년의 17억 3200만㎥를 고비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각 토후국은 석유 산출이 지속되는 시기 안에 공업화를 달성하려는 목적으로 공업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특히 기간산업의 확충 및 제조업의 육성, 무역 및 관광 등의 서비스 산업의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부다비는 철강공장·시멘트 공장을 비롯하여 각종 공장을 건설, 가동 중이며, 두바이는 세계 최대의 선박수리용 도크, 알루미늄 제련공장, 천연가스 액화공장, 시멘트 공장 등을 가동 중이다. 이밖에 석유가 산출되지 않는 다른 토후국은 농업·수산업의 개발과 관광휴양지로서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두바이의 석유 매장량은 40억 배럴로 아부다비(922억 배럴)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또한 아랍지역에서는 ‘석유 없이 성장도 없을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두바이의 재정 중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석유에 기대지 않고도 두바이는 연평균 GDP 성장률이 10퍼센트에 이르는 고속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석유 고갈에 대비해 일찌감치부터 준비한 중동의 비즈니스 허브 전략이다. 두바이는 이미 1970년대부터 석유의존 경제에서 벗어날 대안적인 발전전략을 모색했다.
1979년에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 항구인 제벨알리(Jebel Ali)항을 건설했으며, 1985년 항구 주변에 중동 최초의 자유무역 지대를 만들고, 국영 항공사인 아랍에미리트항공을 설립하는 등 국제무역을 위한 기반을 닦아 왔다. 제벨 알리 자유무역지대에 각종 특혜를 부여하여 제조업 부문에 외국인 투자유치를 강화한 결과 1999년 6월에 이르러서는 70개국 1,500여 개 업체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주요 수출국은 인도, 이란, 이라크,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미국, 홍콩, 벨기에, 중국 등이고, 주 요 수입국은 중국, 미국, 인도, 독일,. 일본, 터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한국 등이다.
5. 문화
아랍에미리트의 종교는 이슬람교(수니파 80%, 시아파 20%)이며, 여러 생활관습들은 이슬람 계율을 따르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코란을 읽으며 자란다. 주요 종교의식으로는 하지가 있는데 매년 이슬람력으로 12월 8일-13일까지 5일간을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를 순례하는 의식이다. 이 때문에 나라 전체는 이 시기가 휴가 기간이 된다. 또 매년 9월 한 달 간은 일출 후부터 일몰 전까지 음식은 물론 물, 음료, 담배 등을 일체 금식하며 특별예배를 보는 라마단 행사가 진행된다. 라마단이 끝난 후 3일간 지속되는 이슬람의 제2대 명절인 이 둘휘트르 역시 중요한 의식으로 여겨지며,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이 기간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여 친지와 이웃을 방문할 수 있게 하였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결혼 및 이혼의 풍습 역시 이슬람법에서 정한 계율을 따르고 있다. 결혼은 의무사항이며, 이혼도 법적으로 허용된다. 배우자 선택에서는 4 촌간에 청혼할 수도 있어 근친결혼이 관습화 되어 있고, 또 4 촌간 결혼에 우선권이 부여되어 있다. 씨족이 다른 사람 간에도 양가의 합의와 결혼 당사자간의 동의만 있으면 결혼이 가능하다. 코란에는 1부 4처까지 허용하고 있으나, 지금은 일부일 체제로 변모하고 있고, 약혼 합의 시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마하르라는 결혼지참금 제도는 아직도 관습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신랑의 보호자가 신부의 보호자를 통해 신부에게 지불하는 것으로, 현금 또는 현물로 전해진다.
의복은 전통 아랍 복장을 입는데, 남성은 기본적인 복장으로 디슈다샤, 칸두라를 가정에서나 간단히 외출할 때 입고 여성은 몸 전체를 가리는 검은색의 아바야를 입는다.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은 영화를 매우 즐기며, 낙타와 말 경주는 예전부터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최근에는 자동차 경주와 사막의 모래 위에서 타는 스키가 인기를 얻어 세계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6. 한-아랍에미리트관계
아랍에미리트는 1980년 6월 한국과 정식으로 수교한 이래 경제, 문화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1987년에 서울 주재 아랍에미리트 대사관이 개설되었다. 특히 2009년 원준 수주를 계기로 중동국가 중 최초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였다. 아랍에미리트 재외국민 수도 늘어 2015년 말 1만 2천 명을 돌파했다. 2016년 3월에는 GCC 국가 최초로 아부다비에 주 UAE 한국 문화원을 개원했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의 UAE 방문은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계기가 됐다. 양국은 정보통신기술, 재생에너지, 특허행정, 인적교류 등 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한국의 대 UAE 주요 수출품목은 자동차, 기호식품, 자동차 부품, 석유제품 등이다. 대 UAE 주요 수입품목은 원유, 석유제품, 금은 및 백금, 알루미늄, LPG 등이다.
<양국수교>
1980. 6.18
<협정 체결>
0 2002. 06, 투자보장협정체결 (2004. 06 발효)
0 2003. 09, 이중과세방지협정 (2005. 03 발효)
0 2005. 11, 항공협정 (2010. 07 발효)
0 2006. 05, 경제, 무역 및 기술협력 협정 (2008. 04 발효)
0 2006. 11, 군사협력협정 (2007. 05 발효)
0 2007. 05, 문화협력 협정 (2008. 02 발효)
0 2009. 06, 원자력협력협정 (2010. 01 발효)
<자료: KOTIS, 한국수출입은행, 외교통상부(교민, 재외국민등록기준으로 추산), 2013년 8월 기준 최신자료, kotra 국가정보 - 아랍에미레이트, 2013.9.30, kotra,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아랍에미레이트 국가정보 2019' >
아라비안어드벤처 한국사무소 : https://arabian-adventures.kr/
정식 명칭은 아랍에미리트연합(United Arab Emirates)으로, 아부다비·두바이·샤르자·라스 알 카이마·아즈만·움 알 카이와인·푸자이라 등 7개의 토후국(Emirates)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우디 동부 걸프만 연안에 위치하는 중동 국가로, 해안선의 길이는 1,318㎞이다.
면적은 8만 3600㎢, 인구는 577만 9760명(2015년 현재), 수도는 아부다비(Abu Dhabi)이다.
종족구성은 남아시아인 50%, 아랍인 23%, 에미리아인 19% 등이다. 언어는 아랍어 외에도 영어가 통용되고, 종교는 이슬람교(수니파 80%, 시아파 16%)가 대부분이며, 기독교와 힌두교도 일부 믿는다.
기후는 사막성 기후로서 여름에는 대단한 고온이며 계절에 따라 강우량이 크게 다르다. 주요 자원으로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이 있고, 토양이 척박하고 수자원이 없기 때문에 농업은 발달하지 못하였다. 공산품으로는 비료·알루미늄·시멘트·플라스틱 등이 생산된다. 그리고 걸프 연안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담수 생산공장이 있다.
연방정부는 아부다비·두바이 2개 토후국의 원유 판매수입을 재원으로 하여 나머지 비산유 토후국들을 지원하여 사회간접자원 건설, 농업·수산업·관광업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대외무역 부문에서는 세계 4위의 원유매장량과 세계 3위의 가스 매장량을 바탕으로 원유 등 관련 부문의 생산과 수출이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한편, 경제의 원유 의존도 축소를 위한 기간산업 투자는 제조·무역·관광 등 여러 분야의 발달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도로 개·보수, 발전소 건설, 대형 송수관 매설, 주거 시설 확대 등 기간산업에 대한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량은 3,637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7962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의 연방공화제이며, 의회와 정당은 없다. 다만, 각 군주제국가의 국왕이 지명하는 4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연방평의회(Fedral National Council)가 명목상 의회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한다. 그러나 입법 기능 및 행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은 없고, 단순한 자문 기구로서 내각에서 제출한 법안을 심의한다. 임기는 2년이며, 연방평의회를 구성하는 각 군주제국가의 의원 수는 아부다비 8명, 두바이 8명, 샤르자 6명, 아즈만 4명, 움 알 카이와인 4명, 라스 알 카이마 6명, 푸자이라 4명이다.
아랍에미레이트(UAE)
통계 자료
국명: 아랍에미리에트 연방
면적: 83,600 sq km (32,400 sq mi)
인구: 200만명
수도: 아부다비(Abu Dhabi) (인구 36만5천명)
인종: 아랍인 87%, 파키스탄인 9%, 이란인 2%
언어: 아랍어
종교: 이슬람
정체: 연방의회를 갖춘 군주제 지리 및 기후
아랍에미레이트는 아라비아반도의 북동쪽끝에서 페르시아만으로 코뿔소의 뿔모양으로 불쑥 튀어나온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과 서쪽으로는 사우디 아라비아, 동쪽으로 오만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쪽 해안은 페르시아만 건너편으로 이란과 마주보고 있으며 카타르는 북서쪽으로 약 50킬로미터(30마일)지점에 있다. 7개의 에미레이트(토후국)는 아부다비(Abu Dhabi), 아즈만(Ajman), 두바이(Dubai), 푸자이라(Fujairah), 라스 알-카이마(Ras al-Khaimah), 샤르자(Sharjah), 움 알 카이와인(Umm al Qaiwain)이다. 전체적으로 아랍에미레이트는 거의 포르투갈과 같은 면적이다. 아부다비 에미레이트가 전체의 85%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장 작은 에미레이트인 아즈만은 단지 250평방킬로미터(100평방마일)에 불과하다.아랍에미레이트의 내륙 대부분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남동부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 사막인 엠프트 쿼터(Empty Quarter)의 끝자락에 위치한 건조한 사막지대이다. 아랍에미레이트의 해안지역은 소금평원으로 되어 있으며 북부와 동부지역은 인상적인 푸른 산악풍경이 펼쳐져 있다. 서식하는 동물로는 아라비아표범, 아이벡스가 있지만 낙타나 야생염소보다 더 자주 볼 수는 없을것이다. 봄과 가을에는 중앙 아시아와 동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철새무리를 북부지역에서 가끔 볼 수가 있다. 푸자이라와 라스 알-카이마의 산악지역외에 아랍에미레이트의 대부분의 초원은 정부의 ‘녹원’정책의 결과이다. 아랍에미레이트의 동부국경에 있는 부라이미 오아시스(Buraimi Oasis)의 천연 대추야지숲조차 시립공원에서 자란 막대한 잔디와 나무로 보충한 것이다.아부다비와 두바이는 5월부터 9월까지 습도가 높고 낮동안의 기온은 대개 섭씨 40도(화씨 105도)를 웃돈다. 푸자이라, 코르 파칸(Khor Fakkan)의 동부 해안도첼【??가끔부는 바람덕분에 기후가 약간 나은편이며 라스 알-카이마뒤의 산악지대에서 또한 약간의 더 누그러진다. 그외의 달에는 일일 평균 최고 기온이 좀더 쾌적한 섭씨 22-30도(화씨 70-85)로 떨어지며 아부다비, 두바이에서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알-아인(Al-Ain)주변의 사막지대에서는 아주 추운 날씨가 되기도 한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으며 나머지기간에는 아주 적은 양이 내리며 12월과 1월에는 온통 진창이 되기도 하여 방심할 수 없는 때이기도 하다. 역사
아랍에미레이트 최초의 주요정착지는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C3세기에 움 안-나르(Umm an-Nar)라고 알려진 문화가 현재의 아부다비 부근에서 일어났으며 그 영향력이 내륙과 지금의 오만지역의 해안을 따라 확대된다. 다음으로 그리스인들이 샤르자에서 50킬로미터(30마일)떨어진 멜레이하(Meleiha), 움 알-카이완 에미레이트의 알-두르(Al-Dour)에서 발견되는 강한 헬레니즘 문화의 특징을 나타낸 주요한 문화적 영향과 유적을 남기게 된다. 중세시대에 아랍에미레이트 대부분의 지역은 걸프해로의 진입과 무역을 관리한 호르무즈(Hormuz)왕국의 일부가 된다.1498년에 포르투갈인이 도착하게 되며 1515년까지 인도와 극동과의 무역으로 번창하던 걸프해에세금을 매기는 세관을 건설하면서 라스 알-카이마부근의 줄파(Julfar)까지 점령하게 된다. 포르투갈은 1633년까지 지배하게 되며 18세기 중반에 걸프해에서 해상력을 훈련하기 시작한 영국인들이뒤이어 들어오게 된다. 영국은 걸프해에서 페르시아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던 항해일파인카와심(Qawasim) 부족연합과 분쟁을 일으키며 파이어릿 코스트(Pirate Coast) 지역으로 진격하여 카와심을 습격하게 된다. 1820년에 영국함대는 발견한 모든 카와심의 선박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거나 나포하게 되며 그 지역의 9개 아랍 왕국에 일반평화조약을 강요하고 주둔지를 설치하게 된다. 전투가 종결됨에 따라 유럽인은 이 지역을 트루셜 코스트(Trucial Coast0라고 부르게 되며 이름은 1971년까지도 지속된다. 이기간동안 내륙의 베두인부족사이의 주요권력은 현재의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통치가문의 선조로 구성된 바니 야스(Bani Yas) 부족연합이 갖고 있었다. 바니 야스는 원래 엠프티 쿼터의 끝에 있는 오아시스인 리와(Liwa)에 근거를 두고 있었지만 1793년에 아부다비로 옮겨오게 된다. 그들은 낙타유목, 소규모의 농업, 부족습격, 자신의 영역을 통과하는 카라반으로부터 보호금탈취같은 전통적인 유목민의 활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영국이 해안을 따라 노예제를 금지한 후에 바니 야스는 노예무역을 인계받게 되고 부라이미(Buraimi)가 동부 아라비아의 주요 노예시장이 되며 이러한 지위는 1950년대까지도 지속된다.영국은 베두인족을 정복하는것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으며 인도와의 연결선을 확보하고 프랑스, 러시아같은 유럽의 경쟁국들로부터 그 지역을 유지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영국은 1892년에 공식적으로 트루셜 코스트에 대해 보호령을 설립하게 되지만 이 지역을 20세기초까지 어부, 진주채취 다이버, 베두인족의 오지로남겨두게 된다. 대부분의 이 식민통치기간동안 샤르자가 에미레이트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이 늘어나고 강력하게 되지만 19세기에 가까워지면서 아부다비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되고 나중에아부다비는 두바이에 의해 그 빛을 잃게 된다.기름시추로 인해 사실상 영국의 무간섭주의적인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기름채굴권이 보장되기 전에 서로 다른 에미레이트간의 국경을 결정해야만 했다. 현지의 어떤 통치자도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아랍에미레이트를 구성하는 7개의 에미레이트의 국경을 구분하는 일이 영국에게 남겨지게 된다. 첫 번째 기름채굴권이 1939년에 보장되지만 다음 14년동안 기름은 발견되지 않는다. 1962년에 아부다비에서 기름수출을 시작하게 되면서 7개의 에미레이트중에 가장 가난하던 곳이 가장 부유한 곳으로 바뀌게 된다. 반면 두바이는 그 지역에서 가장 분주한 무역항으로서의 명성을 공고히 하기위해 온 힘을 집중하게 된다. 두바이는 자체내에 기름을 발견하게되는 1966년에 이미 성공한 중계무역항이 된다. 다른 에미레이트들은 그리 운이 좋지 않았으며 보조금을 얻기위해 아부다비로 향하게 된다.1971년까지 걸프해에서 떠날 계획이라고 영국이 1968년에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통치자들에게 충격을 주게 된다. 영국의 원래 계획은 바레인, 카타르, 트루셜 코스트로 구성된 하나의 단일국가를 형성하는 것이었지만 이것은 거의 즉각적으로 깨지게 된다. 1971년 협상을 통해 사실상 바레인, 카타르가 독립을 하게 되고 새로운 연방국인 아랍에미레이트가 형성된다. 그 당시에 많은 외부인들이 아랍에미레이트를 엉성하게 모아놓은 인위적인 영국의 창작물로서 여겼다. 이것이 어느정도 사실로 드러난 반면 좀더 작고 가난한 에미레이트들이 스스로의 영토만으로는 독립국으로서 생존해갈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 것도 사실이다. 비관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아랍에미레이트는 아랍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문제가 없는 나라로 주요한 국제 사업중심지가 되었다.아랍에미레이트에서의 정치적인 생활이 논쟁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에미레이트간의 국경분쟁이 1970년대내내 계속되었으며 수행되어야할 7개 에미레이트간의 통합정도도 끊임없는 분쟁거리로 남아있다. 아랍에미레이트는 1990-91년에 반-이라크연합에 군대를 파견했으며 쿠웨이트의 자유화이전에 수개월동안 외국군이 주둔하기도 한다. 그 결과로 서방과의 강한 유대를 더욱강화시키게 되지만 이것으로 인해 아랍에미레이트(특히 두바이)가 이란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단시키지는 못한다. 1998년초에 아랍에미레이트는 기름가격의 추락을 겪게 된다. 1998년 1/4분기동안 이 검은 끈적끈적한 물질의 가격이 35%나 떨어지게 되고 아랍에미레이트의 정부 수입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그 중 70%가 기름가격 하락에서 기인한 것이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1,632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42,934
연간 성장율: 3%
인플레이션: 5%
주요 생산품: 기름, 가스, 정유화학, 어업
주요 교역국: 미국, EU, 일본 문화
대부분의 에미레이트인이 이슬람율법의 말리키(Maliki)나 한발리(Hanbali)파에 서명한 수니 무슬림(Sunni Muslims)이다. 한발리파의 대부분이 와하비파(Wahhabis)이지만 아랍에미레이트의 와하비파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처럼 그렇게 엄격하지도 않으며 금욕적이지도 않다. 아랍에미레이트가 아마도 걸프해에서 가장 자유로운 국가일테지만 서방의 기준으로는 여전히 아주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랍에미레이트에는 또한 좀 더 소규모의 이바디(Ibadi)무슬림과 쉬테(Shiite)무슬림의 공동체가 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인구중에 가장 이상한 것은 이 나라에 살고있는 2백만 인구중에 단지 5십만명만이 아랍에미레이트 시민이라는 사실이다. 나머지는 걸프해의 다른 국가나 파키스탄, 이란, 인도에서 쫓겨난 추방자들이다.아랍어가 공식어이지만 영어가 널리 사용된다. 두바이에서 여행자는 또한 이란에서 사용되는 페르시아어인 파르시어(Farsi)를 사용할 수도 있다. 우르두어(Urdu)는 아부다비와 두바이에 사는 수많은 파키스탄 추방자들이 사용한다. 아랍에미레이트의 요리는 풀(fuul)(파바콩, 마늘, 레몬으로 만든 반죽), 펠라펠(felafel)(이집트콩 반죽을 공모양으로 튀긴 것이 아랍의 납작한 빵조각에 제공됨), 후모스(houmos)(마늘, 레몬과 제공되는 익힌 이집트콩 반죽), 슈와르마(보통 납작한 빵이나 피타에 제공되는 양이나 닭고기)같은 중동음식이 풍부하다. 일반적인 범위의 비알콜음료를 다양하게 마실 수 있으며 술은 3성급이나 더 좋은 등급의 호텔에 있는 식당이나 바에서만 팔며 가격은 아주 비싸다. 샤르자에서는 술을 전혀 팔지 않는다. 축제 및 행사
종교축제는 이슬람의 히즈라(Hijra)력으로 개최되므로 날짜가 매년마다 다르다. 아이드 알-피르트(Eid al-Fitr)(라마단의 종료), 아이드 알-아드하(Eid al-Adha)(순례), 라일라트 알-미라즈(Lailat al-Mi’raj)(마호메드의 승천), 마호메드의 탄신일과 이슬람의 새해가 주요축제이다. 비종교적인 휴일로는 새해(1월 1일), 국립 기념일(National Day)(12월 1일)이 있다. 여행자 정보
비자: 영국시민과 걸프해에 위치한 대부분의 국가시민은 비자가 필요없다. 그외의 다른나라 국민은 비자를 받아야 한다. 여권에 이스라엘을 방문한 증거가 있으면 아랍에미레이트로의 입국이 거절된다.
보건위생: A, B형 간염
시간대: GMT/UTC + 4 시간
전압: 220V(아부다비에서는 240V), 50Hz
도량형: 미터법(변환표 참고) 경비 및 환전
통화: 아랍에미레이트 디르햄(dirham)화
일반경비:
저렴한 식사: US$3-5
중급 식당: US$5-10
고급 식당: US$10이상
저렴한 숙박지: US$15-40
중급 호텔: US$40-80
고급 호텔: US$80이상 아랍에미레이트는 비용이 적게드는 나라가 아니지만 비용을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중급정도의여행으로 예산을 짜려면 하루에 미화 약 $50정도를 사용할 것으로 계획을 세우기 바란다. 좋은 유스호스텔이 있는 두바이와 푸자이라에서는 아마 반정도밖에 쓰지 않을 것이지만 값싼 호텔이 없는 아부다비에서는 두배가 들 것이다.현금은 환전소나 은행에서 환전할 수 있다. 가끔 환전소가 은행보다 더 좋은 환율로 바꿔주지만 여행자수표를 바꾸는데는 까다롭게 굴수도 있다. 소지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미국달러화이며 다음이 영국 파운드화이다. 신용카드는 널리 사용되며 하나이상의 국제 ATM시스템과 연결된 ATM기가 많다.
아랍에미레이트에서는 대개 팁을 주지 않아도 되지만 대부분의 웨이터들이 아주 낮은 임금을 받으므로 팁을 받는다면 틀림없이 고마워할 것이다. 계산서에 첨부된 서비스비는 대개 서빙직원이 아니라 식당의 수입으로 돌아간다. 대부분의 호텔에서 할인을 흥정할 수 있지만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실제로 다른 모든 가격은 고정되어 있다. 여행 시기
일년중 아랍에미레이트를 방문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날씨가 가장 좋은 11월과 4월 사이이다. 나머지 기간에는 밖으로 나가 돌아 다니는 대신에 차라리 냉방장치된 방에서 달리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무슬림의 단식기간인 라마단은 아랍에미레이트에서는 엄격하게 지켜지며 이것은 일출부터 일몰까지는 공공연히 먹지도, 마시지도, 담배피지도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마단 기간동안에는 평소에 제공되던 술도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다음 몇해동안 라마단은 12월-1월에 있다. 주요 여행지
두바이(Dubai)
두바이는 무엇이든지 가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보루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두바이시의 부유함은 기름이 아니라 무역에 기초한 것이며 걸프해에서 어떤곳도 두바이와 같은 곳이 없다. 두바이에는 돌아볼 곳이 많지는 않지만 이 지역에서 가장 태평한 도시로 멋진 나이트라이프를 즐길 수있으며 면세쇼핑의 기회가 많은 곳이다. 두바이의 분위기에 젖어 야외시장과 부두가를 돌아다니면서 며칠을 보내기에도 아주 좋지만 두바이에서 ‘오래된’ 어떤 것을 찾기를 기대하지는 말기 바란다. 다행스럽게도 두바이는 걸프해에서 ‘오래된’것이 거의 중요하지 않은 곳이다.아랍에미레이트의 7개 에미레이트중에 두바이는 독립을 보유하고 연방기관의 권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많이 싸우고 있는 곳이다. 두바이는 세계적인 골프경기, 테니스경기, 승마경기, 사막랠리를 개최하면서 걸프해에 위치한 모든 다른 도시중에 가장 국제적인 이력을 자랑하고 있다. 1995년에는 걸프해의 화려한 볼거리였던 미스월드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두바이의 부유함은 재수출무역에서 나온다. 즉 상인들은 물품을 수입하여 국내에서 팔기보다 다시 재수출하는 것이다. 과거에 ‘재-수출’은 기본적으로 밀수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었으며 특히 인도로의 금밀수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두바이의 무역은 대부분 합법적이며 금은 인도대륙, 아라비아반도의 다른 국가로 다시 옮겨 선적해 보내는 소비재로 대체되었다. 두바인역시 자체의 기름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두바이는 실제로 두 개의 도시로 북동쪽의 데이라(Deira)와 남서쪽의 두바이(Dubai)가 그것이다. 이 두 도시는 걸프해로 흘러가는 크릭(Creek)(알-코르(al-khor))에 의해 분리된다. 도시중심은 사실상 데이라에 있으며 대부분의 저렴한 호텔은 데이라의 수크(souk)(야외시장)에 위치하고 있다.두바이여행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크릭을 따라 가는 배를 타는 것인 아브라(모터가 달린 수상택시)를 빌리는 것이다. 아덴(Aden)에서 뭄바이(Mumbai)(봄베이(Bombay))에 이르는 항구로 향하는 범선이 화물을 싣고 내리는 곳인 크릭의 데이라쪽 선창을 따라 걷는것도 아주 재미있다.두바이 박물관(Dubai Museum)은 크릭의 두바이쪽으로 19세기초에 지은 알-파하이디 요새(Al-Fahaidi Fort)에 위치하고 있다. 이 요새는 두바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며 여러해동안 두바이 통치자의 거주지이자 정부건물이었다. 박물관에는 두바이의 역사, 베두인족의 생활,항해, 식물 및 동물, 무기, 에미레이트의 춤, 악기, 지역 고고학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두바인시에 관한 멋진 멀티미디어쇼를 참관할 만하며 1950년대처럼 보이는 두바이 야외시장의 재현이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 두바인시가 어떻게 보이는가를 알고 싶다면 남쪽으로 4킬로미터(2.5마일)정도 가서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re)의 37층에 있는 전망탑을 둘러보기 바란다.멀티미디어쇼를 뒤로하고, 차양을 친 유서깊은 수크(야외시장)는 많이 남아있지 않으며 두바이의 동부와 데이라의 아브라 선착장 북부에 남아있을 뿐이지만 둘다 가까운 곳에 통풍탑(전기를 이용하지 않는 냉방장치인 걸프해의 독특한 건축형태)이 있다. 둘러볼만한 시장은 데이라의 황금수크(야외시장)로 아브라 선착장의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의 밀수역사에 꼭맞는 곳으로 중동황금시장의 노련한 숙련가들조차 아라비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수크의 규모에 숨을 헐떡이게 되는 곳이다.두바인에서 몇몇 중요한 쇼핑을 즐기고 싶다면, 쇼핑천국에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쇼핑센터가 거의 매년마다 하나씩 개장하며 항상 지난번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한 것이다. 차양을 친 야외시장에서 멀지않은 데이라의 베니야스 광장(Beniyas Square)구역에서 저렴한 전자제품을 찾을 수 있다. 나이트라이프는 고급호텔의 값비싼 식당, 바, 디스코장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값싸지는 않지만 걸프해의 다른곳을 여행하던 여행자라면 이런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며 적어도 대부분의 곳에서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형편없이 노래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을때까지는 말이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레이트의 북부해안에 있으며 아부다비에서 동쪽으로 약 125킬로미터(80마일)떨어진 곳에 있어 공동택시나 미니버스로 갈 수 있다.
아부 다비(Abu Dhabi)
현대적이고 번지르르하며 반짝반짝 윤이나며 쭉쭉뻗은 아부다비시가 40년전에는 쓸쓸한 어촌이자 진주채취마을이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아부다비는 걸프해에서 가장 흥미로운 도시는 아닐지라도 비난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맥빠진 도시는 아니다. 1761년에 건설된 아부다비는 통치자인 알-나히안(Al-Nahyan)가문이 1793년 리와에서 옮겨옴으로써 그들의 고장이 된다.19세기에 상당히 성공한 진주채취의 중심지였지만 진주산업이 붕괴되면서 아부다비시도 쇠퇴하게 되고 비참한 곳으로 전락하고 만다. 아부다비 에미레이트를 구하기 위한 절망적인 노력으로 1930년대에 기름채굴권을 확보하게 된다. 기름으로 인한 수입이 다음 30년동안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할 때 갈대와 진흙벽돌로 지은 오두막은 급속하게 은행과 상가로 대체되며 정착지는 이제 아랍에미레이트의 북부해안 중심에서 T자형의 아부다비섬 전체에 넓게 퍼져 확대된다. 아부다비는 지금까지 아랍에미레이트의 7개 에미레이트중에 가장 부유하고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다.대개 구요새(Old Fort) 또는 화이트요새(White Fort)로 알려진 알-후슨궁(Al-Husn Palace)이 아부다비에서 30년 역사의 얼마안되는 건물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여행자는 골동품을 찾으러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원래 요새는 알-나히안(Al-Nahyan) 왕조의 첫 번째 통치자가 건설했지만 19세기말에 현재의 건축물로 대체된다. 현재 현대적으로 복원되어 문서보관실로 사용되는 요새의 회반죽을 칠한 벽은 멋진 마천루에 둘러싸여 여전히 눈길을 끈다. 안뜰과 중앙(북쪽의)문의 타일작업은 특히 주목할만하다.요새옆에는 큰 정체불명의 문화재단(Cultural Foundation)이 있으며 외부의 모양보다는 내부가 훨씬 더 흥미로운 곳이다. 이곳은 주로 도서관, 연구소, 문서보관실로 이용되지만 종종 지역 역사, 이슬람 예술, 오래된 필사본 등을 전시하기도 한다. 아부다비 남쪽으로 약 5킬로미터(3마일)지점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여성공예센터(Women’s Craft Centre)가 있으며 전통직물과 기타 수공예품을 전시하며 팔기도 한다.현지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고 싶다면 아부다비의 북동부로 향해가서 범선선창과 생선시장을 둘러보기 바란다. 두바이의 선창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왁자지껄한 혼잡함과 함께 훌륭한 생선요리 식당과 멋진 아부다비시전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북부 선창에 있는 오래된 수크(야외시장)는 현대적인 시장으로 대체되기도 했지만 소규모의 황금시장과 수많은 가정용품 노점상이 있다.아부다비에는 값싼 호텔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가격은 하루밤에 미화 약 75$부터 시작하여 하늘높은줄 모르게 치솟는다. 아부다비의 나이트라이프는 아주 활발치는 않다. 기름은 쉽게구할 수 있지만 아부다비시는 정확히 가스는 없다.
알-아인(Al-Ain)
알-아인은 부라이미 오아시스(Buraimi Oasis)의 중심도시로 아부다비와 오만의 국경에 위치하고있다. 알-아인의 자매도시인 부라이미는 국경에서 오만쪽에 있지만 여행자들은 두 곳을 자유롭게 갈 수 있으며 비자를 받기위해 이리저리 애쓰지 않고도 오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곳이다.부라이미 오아시시는 BC 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현재의 아랍에리레이트지역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인간이 거주하던 곳이다. 좀더 최근에 알-아인은 지금의 아부다비의 통치자인 샤이크 자예드(Shaikh Zayed)의 출생지였으며 그는 이곳에 많은 돈을 쏫아붇게 된다. 부라이미는 알-아인과 같은 후원을 받지는 못했지만 편안한 지방도시로 남아있다. 이러한 결과로 생긴 두 도시간의 대조로 방문하기에 아주 흥미로운 곳이 되었다. 여름에 인기있는 곳은 해안의 습도로부터 환영받는 휴식처인 오아시스의 건조한 열기라고 할 수 있다.알-아인 박물관(Al-Ain Museum)과 이스턴요새(Eastern Fort)는 알-아인의 남동쪽에 같은 건물을 공유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기름발견이전의 생활, 베두인족의 보석, 무기, 악기, 베두인 텐트의내부장식등이 전시되어 있다. 장식에 구애받지 않는 샤이크 자예드가 받은 전시품중에는 카톨릭의 이사벨훈장(Order of Isabel the Catholic), 1970년에 요르단으로 3기의 비행기를 납치한 팔레스타인민병대 지도자의 총알도 있다. 요새안에는 안뜰의 오래된 대포외에 별로 볼만한 것이 없다.양이나 염소를 파는 시장에 가고 싶다면 아랍에미레이트의 남부와 오만북부에서 많은 사람들과 베두인족이 몰려드는 근처의 가축수크(야외시장)를 둘러보기 바란다. 특히 장사가 가장 바쁜시간인 이른 아침에 돌아다니기에 아주 재미있는 곳이다. 아침이면 도심에 가까운 곳에 소규모의 낙타시장이 서기도 한다. 동물의 오물에서 나는 악취에 질렸다면 국경을 넘어 북쪽으로 가서 과일과 야채로 가득한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고 뒤로는 알-힐라 요새(Al-Hilla Fort)가 자리잡고 있는 멋진 분위기의 부라이미 야외시장(Buraimi Souk)을 둘러보기 바란다. 근처에는 멋지게 복원된 400년역사의 알-칸다크 요새(Al-Khandaq Fort)가 있으며 요새의 안뜰을 둘러보고 총안이 있는 흉장을 올라보는 것도 아주 좋다.낙타경주가 겨울동안 금요일아침마다 알-아인에서 약 20킬로미터(12마일)떨어진 곳에 아부다비로 가는 도로에서 펼쳐진다. 한시간의 산책부터 베두인족의 텐트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 포함된 일박 트레킹까지 다양하게 낙타사파리를 할 수도 있다. 알-아인은 아부다비에서 동쪽으로 차를타고 2시간이 걸린다. 알-아인과 부라이미는 버스나 택시가 오고가는 나무가 늘어선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두바이 남쪽으로도 거의 같은 거리이며 택시로 갈 수 있다.
샤르자(Sharjah)
7개의 에미레이트중에 3번째로 큰 사르자는 아랍에미레이트를 방문하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그냥 무시하거나 금방 통과해지나가는 곳이다. 아랍에미레이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부 건축물, 아랍 에미레이트에서 가장 큰 모스크사원, 흥미로운 고고학박물관, 규모가 작은 디즈니랜드, 수많은 감시탑, 전체 걸프해에서 가장 멋진 자연역사 박물관, 두바이에 버금가는 수크(야외시장), 현재의 거의 모두 사라진 옛날의 생활방식을 볼 수 있는 유서깊은 수크가 있는 곳이다. 또한 페르시아 카펫을 구입하기에도 아주 좋은 곳이다. 샤르자는 두바이보다 더 가난한 곳으로 오랫동안 여겨졌지만 1980년대에 아랍에미레이트의 관광개발을 주도하면서 아랍에미레이트에 도착하는 단체여행객들의 주요한 입국지역이 되었다. 샤르자는 두바이부근의 북부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라스 알-카이마(Ras al-Khaimah)
아랍에미레이트의 에미레이트중에 가장 북쪽에 위치한 라스 알-카이마는 아랍에미레이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의 하나이다. 바다와 산, 사막으로 둘러싸인 잘 개간된 풍부한 초원지역으로 안락한 라스 알-카이마시는 여행자를 환영하지만 여행자에게 몰두하는 곳은 아니다. 주요 관광지로는 흥미로운 박물관, 멋진 분위기의 구도시, 수크(야외시장), 어선항구, 아랍에미레이트에서 가장 멋진 낙타졍주등이 있다. 근처에는 서너곳의 중요한 고고학현장이 있으며 그중에는 북쪽으로 5킬로미터(3마일)떨어진 쉬말(Shimal)에 있는 쉐바여왕의 궁전(Queen of Sheba Palace)이 있다. 라스알-카이마는 두바이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킬로미터(60마일)지점에 있으며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다.
푸자이라(Fujairah)
아랍에미레이트의 7개 에미레이트중에 가장 역사가 짧은 푸자이라는 오만해에 접해있으며 아랍에미레이트에서 가장 멋진 곳으로 여겨지는 동부해안 여행을 시작하기에 좋은 곳이다. 고고학 전시물과 민족학 전시물, 유령이 나올것같은 오래된 도시, 300년된 옛요새를 공개한 박물관이 자랑거리이다. 푸자이라에서 북서쪽으로 12킬로미터(8마일)떨어진 곳의 비트나(Bithna)에는 공공묘지여겨지는 롱챔버묘지(Long Chambered Tomb)와 멋진 요새를 포함하여 여러곳의 고고학유적이 있다.
디바(Dibba)
디바라는 이름은 이슬람 역사에서 예언자 마호메드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그가 죽은후 변절한 여러 종족이나 도시와 회교군간에 벌어진 리다전쟁(Ridda Wars)의 대격전지의 현장으로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AD633년에 디바에서 회교군이 승리함으로써 아라비아에 대한 무슬림의 정복이 끝나게 된다. 오늘날 디바는 3개의 조용한 해안마을로 되어 있으며 각마을은 다른 통치자(푸자이라, 샤르자, 오만)에 속해있다. 디바는 가상으로 비교해 볼때 이태리의 어촌만큼 그렇게 멋지지는 않지만 사실 아름다운 곳이다. 디바는 푸자이라에서 북쪽으로 약 50킬로미터(30마일), 두바이에서 동쪽으로 145킬로미터(90마일)떨어진 곳에 있으며 두곳에서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다. 레저스포츠
수상스포츠가 아랍에미레이트의 해안을 따라 인기가 있으며 관광업계는 아랍에미레이트가 계절적인 추위로 고생하는 유럽인에게 ‘바다와 태양’이 있는 겨울 여행지로 좋다고 선전하고 있다. 다이빙센터나 제트스키 대여같은 대부분의 수상스포츠 시설은 최고급호텔의 일부이며 개별여행자에게는 대개 개방이 되지 않는다. 낙타사파리는 알-아인에서 할 수 있다. 4륜구동 자동차로 사막을 둘러보는 사막사파리나 ‘와디바싱(wadi bashing)’은 두바이나 샤르자에서 일정을 잡을 수 있다. 좀더 소심하지만 아주 기상천외한 경험으로는, 호사스러운 호텔의 투숙객이거나 플레이멤버로 초대를 받아야 하지만 두바이에 진짜 잔디로 된 여러 골프코스가 있다는 점이다. 갖춰야 할 복장규정과 지불해야하는 비싼 비용, 맞붙어 씨름해야 할 물 보호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랍 에미레이트 로 가는 길
아랍에미레이트의 주요 국제공항은 두바이와 아부다비에 있지만 샤르자로 운항되는 항공기로 늘어나고 있다. 좀더 작은 국제공항이 라스 알-카이마, 푸자이라, 알-아인에 있다. 두바이와 아부다비에서 대부분의 주요 유럽도시, 주요 중동 및 걸프해 도시로 매일 운항된다. 또한 미국, 북아프리카, 인도대륙, 호주로도 운항된다. 공항 출발세는 없다.두바이와 오만의 무스카트(Muscat)에서 매일 버스가 운행되지만 버스가 운행되는 도로에 아랍에미레이트의 국경초소가 부족해서 여행자에게 비자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정기버스가 두바이와 아부다부, 사우디 아라비아의 동부지역으로 운행되지만 카타르로 가는 버스나 택시는 없다. 샤르자와 이란의 반다레 압바스(Bandar-Abbas)간에 배가 운행되며 편도로 12시간이 걸린다. 국내 교통편
7개의 에미레이트간의 버스서비스나 도시간에 운항되는 비행기가 없으므로 자가용으로 가지않는 여행자라면 에미레이트간에 여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택시를 타는 것이다. 답답하겠지만 저렴하며 현지인을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주요한 문제는 아부다비-두바이노선을 제외하고는 인원을 채우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아부다비와 두바이간에는 좀더 저렴한 미니버스를 탈 수도 있다.아랍에미레이트는 자동차를 소지한다는 것이 종종 재미있게 지내는 것과 A에서 B까지 가는 교통수단을 선택하는데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간에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뜻하는 나라중의 하나이다.자동차 렌트는 서양국가에서보다 약간 더 비쌀 뿐이며 두바이에서 아부다비까지는 비교적 쉽게 조정할 수 있다. 주요도로는 아주 잘 정비되어 있으며 이론상으로 여행자는 오른쪽으로 운전해야 한다. 운전기준은 특별히 높지 않으며 운명론이 아주 지배적이다. 여행자가 약간이라도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방어운전을 하기 바란다. 특히 커브길에서 말이다.두바이와 알-아인간에만 여행자에게 유용한 공공버스가 운행된다. 아부다비와 알-아인에서 택시는 미터제이지만 두바이와 다른 에미레이트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주의하기 바란다.
아랍에미레이트(UAE:UnitedArabEmirates)
아랍 에미레이트 ( UAE : United Arab Emirates) 두바이 ( Dubai ) ∥ 아부다비 ( Abu Dhabi ) 아랍 에미리트 연합은 걸프만에 위치해 있으며 아부다비(Abu Dhabi), 두바이(Dubai), 샤자(Sharjah), 라스 알 카이마(Ras al-Khaimah), 움 알 콰인(Umm al-Qawain), 아즈만(Ajman), 후자이라(Fujairah)의 7개 에미리트가 연합된 연방국가로 원래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배를 받던 토후국(土侯國)이었다가 독립했다. 수도는 아부다비 시이다. 남북으로 약 110km, 동서로 약 600km에 이르는 규모로 북서쪽은 카타르, 서쪽과 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 남동쪽과 북동쪽은 오만과 경계를 이룬다. 북쪽의 페르시아 만, 동쪽의 오만 만 건너편에는 이란이 있다. 이슬람 정착 이전 현재의 아랍에미리트 지역에는 아랍족 들이 부족을 구성하며 살고 있었다.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칼리프 가 지배할 때 이슬람 이 확실히 정착되었으나 페르시아 만 건너 이란의 영향으로 시아파가 침투하였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이 지배했으나 17세기에 영국이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점차 이 지역을 보호령화시켰다. 그러나 번왕국들은 모두 국내 지배를 자유로이 할 수 있었다. 18세기까지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이 유럽 국가의 선박들을 자주 습격했기 때문에 해적 해안(海賊 海岸, Pirate Coast)이라고 불렀다. 1820년 1월 8일 영국과 아라비아 반도의 셰흐들 사이에 체결된 해상 조약에 따라 휴전 오만이 수립되었고 1853년에는 영국과의 항구적인 해상 휴전 조약이 체결되었다. 1971년 영국이 정권을 이양할 때 바레인과 카타르는 분리 독립했으나, 나머지 7개 번왕국은 연합을 결성하여 독립하였다. 저지대인 사막평원이 대부분의 지역에 걸쳐 단조롭게 펼쳐져 있다. 동쪽 무산담 반도를 따라 솟아 있는 오만의 알하자르 산맥만이 해발 150m가 채 안 되는 사막 평원에 거의 3,050m에 이르는 높이로 갑자기 치솟아 특색있는 지형을 이룬다.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긴 해안선은 북쪽의 페르시아 만 연안이며 훨씬 짧은 오만 동부 연안에는 3개의 천연 심해항이 있다. 기후는 연안지역의 경우 덥고 습하며 내륙은 덥고 건조하다. 연평균강우량 75∼100㎜에 지나지 않으며, 여름 기온은 연안지역이 46℃, 사막 내륙은 49℃ 또는 그 이상에 이른다. 1월평균기온은 18℃이다. 샤말풍이 한겨울과 초여름에 북쪽과 북서쪽에서 먼지와 모래를 싣고 불어온다. 식생은 드물고 대개 키 작은 관목류 정도만이 분포하고 있어 유목민들이 기르는 가축의 사료로 이용된다. 페르시아 만 연안에는 고등어, 참바리, 참치 떼와 상어가 서식하며 때로는 고래가 발견되기도 한다. 아랍에미리트의 석유 와 천연 가스 매장량은 세계 최대 규모로 추정된다. 20세기말 현재 석유는 세계 총매장량의 약 11%를 차지하고 있으며, 천연 가스는 세계매장량 가운데 5%로 세계 10대 매장국에 꼽힌다. 아랍 에미리트 연합은 쿠웨이트와 함께 유수한 석유수출국으로 국민 1인당 소득이 2만 5천불에 이르는 부자나라다. 그래서인지 이미 중동의 국제도시로 자리잡은 이나라의 두바이는 그야말로 세계 최첨단의 시설이 갖춰진 현대 도시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아랍 에미레이트 연합은 연합국이 되면서부터 중동지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국가가 되었으며 내부의 갈등과 긴장을 해결하며 안정적인 체제구축에 성공했다. 아랍 에미레이트 연합은 지역별로 문화적 차이가 있는데 예를 들어 아부다비(Abu Dhabi)에서 두바이(Dubai)까지 차로 얼마 걸리지 않지만 엄청난 지형적,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 아부다비(Abu Dhabi)가 문화적으로 아주 보수적인 반면 두바이(Dubai)는 훨씬 진보적 자유성향을 띄고 있다. 걸프만에 해안가에 위치한 이 작은 무슬림 나라는 여러 세기 동안 숨겨져 왔으나 1970년대 석유를 발견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석유파동의 결과로 지난 30년 동안 가난에서 일약 아랍 에미레이트의 국민들을 전설적인 부자대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 우리나라와의 관계 우리나라는 1981년 아랍 에미리트와 수교한 이래 양국 고위인사의 교환방문 등 우호친선 관계 증진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양국간 통상 투자 진흥을 위해 2002년도에는 한-UAE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의 성공적 개최, 주재국의 대규모 대표단 부산 아시안게임 파견, 우리 전통무용단의 두바이 및 아부다비 공연 등을 통해 한층 높아진 아랍 에미리트 국민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 아랍 에미레이트 (United Arab Emirates) 개요 o 공식명칭: 아랍 에미리트 연합국 (The United Arab Emirates) o 수도: 아부다비 o 면적: 약 8만3천㎢ ( 한반도의 0.379배) o 인구: 약 999만 명(2022년) o GDP: 약 4,015억$(2022년. 세계 34위) o 언어: 아랍어 o 주요민족: 남아시아인(50%), 아랍인(23%), 에미리아인 o 기후: 사막성기후 o 정부/의회형태: 연방제 / 단원제 o 종교: 이슬람교(96%), 그리스도교(4%) o 화폐: 아랍에미리트 디르함 (Dirham) o 국화: o 국가번호: 971 o 전압: 220V / 50Hz o 도메인: .ae ◈ 아랍 에미레이트 (United Arab Emirates) 역사 16세기초 걸프지역에서 포르투갈인들의 상업적 독점권은 유럽국가들, 즉 처음에는 네델란드 그리고 다음에는 영국에 의해 도전받고 있었다. 1650년 오만으로부터 포르투갈이 철수하자마자, 네델란드와 영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19세기 영국인이 도착했을 때 UAE는 협상해안(Trucial Coast)으로 알려진 지역을 7명의 독립된 에미레이트들이 연합하여 통치하고 있었다. 16세기초 포르투갈의 걸프만에 대한 독점적 상업적인 지위는 동부 무역에서 이윤을 분할하려는 유럽의 무역업자 -첫 번째는 네덜란드 나중에는 영국에 의하여- 들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되었다. 동부에서 포르투갈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하였고, 1650년 그들은 모든 아랍의 해안에서 세력을 잃고 오만으로 퇴각하였다. 그후 이 지역에서 네덜란드와 영국의 상업적, 정치적 각축이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네덜란드가 우세하였으나, 1766년 영국이 인도에 대한 패권을 강화함으로써 네덜란드 세력은 실질적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걸프만에서 유럽국가들과 아랍의 해적 행위는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매우 왕성하게 전개된다. 까와씸(Qawasim)이라는 아랍의 해상 부족들이 권한을 휘둘렀고 걸프만의 모든 아랍 해안에 패권을 장악한 와하비(Wahhabi) 일당에 의한 약탈행위가 자행되었을 때인 19세기초에는 불법 행위가 고조에 달했다. 영국기를 게양한 선박에 대한 해적들의 공격은 결과적으로 1818년 라스 알 카이마의 해적 사령부와 240km에 이르는 해적해안(Pirate Coast)의 항구에 대한 공격을 유도하였다. 1820년 해적행위와 노예무역을 억제하기 위한 일반 평화협정이 영국과 걸프만 아랍 부족국가들간에 이루어졌다. 이 조약은 해적해안과 바레인의 주요 세이크(Sheikh)들에 의해 서명되었고, 조약의 시행을 위해 영국의 강력한 함대가 라스 알 카이마에 주둔하게 되었다. 1820년 일반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이곳에는 단지 5개의 ‘협상국가'(Trucial State)가 있었다. 1866년 샤르자의 최고 세이크가 사망하자, 그 영역은 그의 네 아들의 통치지역으로 분할되었고 샤르자, 라스 알 카이마, 디바(Dibba) 및 칼바(Kalba)에 독립된 분가(分家)를 형성하였다. 19세기말이 되자 프랑스, 독일 및 러시아도 걸프만에 커다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92년 영국은 Trucial 통치자들과 각각 분리되었지만 본질적으로 내용은 동일한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로써 이 지역은 사실상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952년 칼바의 통치자는, 후자이라의 통치자가 했던 것처럼, 기존의 영국과 Trucial 국가간에 존재하는 모든 협정을 받아 드림으로서 칼바는 샤르자에 병합되었다. 드디어 1952년 영국의 충고로 두바이에서 7개의 모든 통치자들이 최소한 1년에 두 번 만난다는 조건으로 협상위원회(trucial council)를 설립하였다. 이의 주된 목적은 국가연합을 주도할 수 있는 행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공통적인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한편 1960년대 중반 석유의 상업적 생산은 아부 다비에게 발전을 위한 커다란 기회를 제공하였다. 1928년이래 아부 다비의 통치자인 세이크 샤크부트(Sheikh Shakhbut bin Sultan an-Nahayan)가 폐위됐을 때인 1966년 8월 개발에 대한 장애는 제거되었다. 왕가의 샤크부트는 그의 젊은 동생 세이크 자이드(Sheikh Zayed bin Sultan)로 대체되었다. 이와 같은 아부 다비의 역사는 엄청난 부(富)의 축적으로 급격히 변모한 한 사회의 전형적인 예가 되고 있다. 1966년 이웃의 두바이에서 석유가 발견되었고, 두바이 또한 석유로 인해 거대한 수익을 얻게 되었다. 영국 세력의 철수로 인한 연합(federation) 형성의 최초 제안은 바레인, 카타르 및 7개의 Trucial State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보다 크고 발전된 이들 국가들은 궁극적으로 분리 독립을 선택하였다. 1971년 12월 1일 영국은 Trucial State과의 모든 기존의 협정을 종결하였다. 그 다음날 아부 다비, 두바이, 샤르자, 움무 알 꽈이완, 아즈만, 및 후자이라는 등 7개국의 에미레이트는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United Arab Emirates)을 형성하였고, 영국과 하나의 ‘친선협정'(treaty of friendship)을 맺었다. 이 연합은 공식적인 헌법이 작성될 수 있는 5년후에 만료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임시 헌법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임시 헌법은 계속 갱신되었다. 라스 알 카이마는 이란이 장악하고 있는 걸프만에 두 개의 Tumb 섬에 대하여 영국이든 아랍 국가이든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힌 1972년까지 이 연합에 참가하지 않았다. 아무튼 UAE는 1971년 ‘아랍연맹’과 UN의 회원국이 되었다. 독립하자마자 아부 다비의 통치자 세이크 자이드는 UAE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1958년이래 두바이의 통치자인 세이크 라시드(Sheikh Rashid bin Said al-Maktoum)는 부통령이 되었고, 그의 맏아들 세이크 막토움(Sheikh Maktoum bin Rashid) 왕자가 수상이 되었다. 비록 아랍국가중 가장 보수적인 국가중 하나였지만, UAE는 1973년 10월 전쟁시 아랍주의에 상당한 지원을 하였으며, 석유의 생산감축과 보이코트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UAE는 미국에 대해 석유의 금수조치를 단행한 최초의 국가가 되기도 하였다. 1990년 8월 쿠웨이트 침공으로 야기된 걸프전 때에도 UAE는 다른 아랍국가들과 함께 이라크의 침공에 대한 저항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모든 국민들에게 6주동안의 군사훈련을 위해 군대에 입대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라크의 침공을 반대하는 군대는 에미레이트에서 군사시설을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한편 두바이의 통치자인 부통령 겸 수상 세이크 라시드는 1990년 10월 사망하였다. 그의 직위는 그의 아들인 부수상 세이크 막토움(Sheikh Maktoum bin Rashid)에 의해 두바이의 통치자로서 승계 되었다. <약사> o BC 3000년경 : 수메르시대에 교역과 상업의 중심지 o 16세기초: 포르투갈인 독점적인 상업활동 전개 o 1622년 : 영국의 지원하에 샤 압바스(Shah Abbas) 포르투갈 세력 축출, 그 이후 영국이 주도권 장악 o 1650년 : 포르투갈인 아라비아해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고 오만으로 철수 o 1820년 : 영국과 대형 선박과 요새 신축을 금지하는 일반평화협정(General Peace Treaty) 체결 o 1853년 : 영국과 항구적 해상평화조약(Perpetual Maritime Truce Treaty) 체결 o 1892년 : 협상해안(Trucial Coast) 영국의 보호령이 됨, 영국은 국방 및 외교정책을 통제 o 1903년 : 영국과 인도간 두바이 정기항로 개설로 두바이 근대화 시작 o 1932년 : 영국의 British Imperial Airway사 샤르자에 공항 개설, 원유의 매장 가능성 확인 o 1952년 : 에미레이트들 Trucial States Council 창설 o 1958년 : 아부 다비에서 최초로 원유 발견 o 1965년 : 아부 다비에 방위군 창설 o 1971년 :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아랍에미레이트연합, UAE(United Arab Emirates)라는 이름으로 국가 수립(12월 2일), 아부 다비의 지도자 세이크 자이드(Sheikh Zayed bin Sultan Al Nahyan)가 연방의 대통령이 됨 o 1979년 : 두바이의 지도자 세이크 막토움(Sheikh Maktoum bin Rashid al-Maktoum) 수상에 임명됨(6. 25) o 1981년 : UAE 중앙은행(UAE Central Bank) 설립 o 1991년 : 세이크 자이드(Sheikh Zayed) 1971년이후 대통령에 연임됨 o 1994년 : 미국(7월) 및 프랑스(9월)와 안보조약 체결 o 1996년 : UAE 탄생 25주년(세이크 자이드 아부다비의 지도자가 된지 30년) o 1999. 5. UAE-오만 국경협정 체결 ◈ 주의사항 두바이는 차량으로 30여분만 외곽으로 달리면 사막을 만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두바이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사막체험, 사막 사파리 투어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두바이를 방문하게 되면 중동의 사막에서 아라비안 나이트를 즐길 수 있는 사막 사파리 투어를 꼭 체험해보도록 하자. <여행시 유의사항> ◐ 여행자 안전관련 일반사항 –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은 정세·치안상태가 비교적 안정된 지역으로서 여행 위험지역, 테러그룹 및 우범지역 등 여행자 안전에 관한 특이사항은 없음. – 아랍에리미트 연합국의 총인구 중 외국인이 약 75%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노동력 부족으로 취업인구의 90% 정도를 인도, 파키스탄, 이집트, 오만, 이란등 외국인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임. 한편, 택시기사의 대부 분은 파키스탄, 인도인이고 여성혼자 탑승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가급적 여성 단독의 택시 탑승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함. – 사고발생 위험이 많으므로 현지인들의 여성들에 대한 자가용 차량의 동승 권유에는 절대 사양 ◐ 풍속, 관습상의 주의사항 – 이슬람국가이므로 휴일은 금요일이며 일주일은 토요일부터 시작됨 회교국 특성상 현지인, 특히 현지여성앞에서 사진촬영을 할 때에는 반드시 동의를 구하여야 하며, 정부청사등 공공건물, 발전시설, 군부대 등 사진 촬영이 제한된 곳이 많으므로 주의 요망(무단 촬영시 경찰에 체포되는 경우도 있음.) – 종교행사는 이슬람력으로 행하여 지는데, 이슬람력은 태음력으로 1년이 354일로서 태양력과 1년에 11일 차이가 생기게 되어, 이슬람력의 라마단(회교금식) 기간은 매년 11일씩 빨라짐. – 라마단기간중에는 호텔을 포함한 모든 식당이 일몰이전까지는 문을 닫으며, 외국인도 낮에는 공공장소에서 흡연, 식음 등을 금함. 단, 호텔내 Room Service는 가능함. ◐ 출입국시 유의사항 무기·마약·돼지고기는 반입이 금지되어 있음. – 비디오 테이프는 검색을 거쳐 반입여부 결정 예방접종 증명서는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아님.(다만, 전염병 발생시 감염지역에서 오는 경우, 예방접종 증명서 필요) ◐ 의료, 건강 – 특이한 풍토병은 없으며, 식수로는 보통 Bottled water를 사용함. – 주요 도시에 최신 의료시설을 갖춘 종합병원과 개인 진료소가 많이 있음 ◐ 두바이 기후 (℃) 지 역 구분/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두바이 (Dubai) 최고평균 24.0 25.4 28.2 32.9 37.6 39.5 40.8 41.3 38.9 35.4 30.5 26.2 최저평균 14.3 15.4 17.6 20.8 24.6 27.2 29.9 30.2 27.5 23.9 19.9 16.3 평 균 19.2 20.4 22.9 16.5 31.1 33.3 35.4 35.8 33.2 29.7 25.2 21.3 강수량mm 15.6 25.0 21.0 7.0 0.4 0.0 0.8 0.0 0.0 1.2 2.7 14.9 ◐ 아부다비(Abu Dhabi) 기후 (℃) 지 역 구분/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아부다비 Abu Dhabi 최고평균 24.1 26.0 29.5 34.5 39.3 40.8 42.1 42.9 40.4 36.5 31.1 26.3 최저평균 13.2 14.6 17.5 20.8 23.8 26.1 28.8 29.5 26.6 23.2 18.7 15.8 평 균 18.8 19.6 22.6 26.4 31.2 33.0 34.9 35.3 32.7 29.1 24.5 20.8 강수량mm 7.0 21.2 14.5 6.1 1.3 0 0 1.5 0 0 0.3 5.2 강수일수 1.2 2.8 2.8 1.2 0.1 0.0 0.0 0.1 0.0 0.0 0.2 1.5 관광 명소 두바이 ( Dubai ) ∥ 아부다비 ( Abu Dhabi ) ★ 스타투어(Star Tour) ☎:(02)723-6360 http://www.startour.pe.kr 블로그 : 스타투어 E-mail: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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